최근에 내가 졸업한 고양국제고 후배들이 "고양국제고 - 고려대" 동문회를 만든다고 연락이 와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국제고 시절을 떠올릴 일이 있었다.
내가 1기였는데 벌써 11기까지 졸업을 해서 대학생이 되었다길래 일차로 놀랐고, 솔직히 몇 명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분명 다 모이지 않았는데도 70여 명이나 모인 단톡방이 생긴 것에 이차로 놀랐다. (일단 1기만 해도 절반은 안 들어왔다. 얘들아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단톡방 좀 읽어줘... 후배들이 열심히 하더라...) 마지막으로 다들 어떻게 살까 궁금했는데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서 진짜 다양하고 멋진 일들을 하고 있어서 뿌듯하고 재밌었다.
자기소개에 고등학교 때 했던 동아리를 써야 하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심지어 내가 만들었음...) 찾아보다가 이래저래 생각이 많이 나서 써보는, 졸업한 지 무려 10년이 넘 (고 컨설팅 4년차에 찌들어가는) 은 1기의 고양국제고 수기.
i. 지원 동기와 입학 이유
사실 중학교 3학년까지만 해도 특목고를 꼭 가야겠다 하는 큰 목표는 없었다. 다만 중학교 3학년이 되면 대충 공부 좀 한다(ㅋㅋㅋ) 싶은 학생들에게는 학교 차원에서 자연스레 특목고 준비를 시작한다. 당시 이과는 영재고/과학고, 문과는 외고/자사고/국제고로 나뉘었고, 확신의 문과였던 나는 막연하게 외고를 가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심지어 취미였던 피아노를 좋아했더니 예고를 가고 싶으면 가라며 완전 방임 자유주의였기 때문에 고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기억으로 딱 그 년도부터 지역 중심의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민의 폭은 경기도로 좁혀져 있었다. (즉, 본인이 사는 도 내에 외고/국제고가 있으면 그 안에서만 지원할 수 있었다. 다만, 도 내에 없는 경우에는 전국 단위로 지원이 가능했다.)
당시 이과가 상대적으로 강했던 안양외고, 과천외고 등을 제외하고 내가 고민했던 곳은 경기외고, 고양외고, 수원외고 정도였다. 경기외고는 교복이 너무 예뻤고, 고양외고는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 많이 지원을 했었고, 수원외고는 프랑스어과를 지원하고 싶었다. 다만, 단 한 군데만을 지원할 수 있어서 리스크가 굉장히 컸다.
그러던 중, 고양국제고가 신생으로 개교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에 학교가 지어지고 있었고 (집에서 멀지 않아서 엄마랑 한 번 구경도 다녀왔다) 커리큘럼 등을 이제 막 소개하는 중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아무래도 약력이 쌓인 타 학교를 지원하는 추세였지만, 나는 오히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1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것을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양국제고를 지원해서 합격했고, 1기를 입학했다.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은 내 선택이 아주 정확했다고 말할 수 있다.
ii. 고양국제고 1기의 학교생활
1기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정말 "모든 것을 우리가 만들어간다" 라는 것이었다. 입학했을 때에는 이제 막 다 지어진 학교, 비닐도 뜯어지지 않은 책상과 침구가 있던 기숙사, 약 200명의 신입생, 그리고 기대에 차 손 들고 들어오신 교사진이 전부였다.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빈칸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함께 만들어냈던 몇 가지만 얘기하자면,
a. 교복: 교복 디자인을 우리가 직접 고르고 수정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이 엄청 예쁜 교복이 탄생했다. 당시 2층이었나 3층에 교무실 앞에 마네킹을 여러 개 주르륵 세워두고 교복 디자인 후보들 중에서 우리가 직접 스티커를 붙여서 (아주 고전적이다) 선정된 교복이다.
개인적으로 경기외고를 가고 싶었던 큰 이유가 교복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되게 비슷하게 생기면서도 색감이나 조화가 더 예쁜 고양국제고 교복을 갖게 되어서 아주 럭키빅키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전국 교복 중에 우리가 제일 예쁨 (도치맘)
체육복과 생활복도 마찬가지였고, 덕분에 기숙사 학교 특성상 정말 많이 입어야 하는 체육복이 예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탄생해서 다행이었다.
보통 마이라고 부르는 저 자켓은 불편해서 잘 입지 않고, 아래처럼 춘추복에 생활복 후드 조합으로 잘 입고 다녔다. 이거 진짜 하드를 뒤져서 찾은 2011년과 2012년, 즉, 1학년과 2학년 때 사진인데 풋풋함 무엇... 거기에 저화질까지 완벽하다.
b. 학교 로고/엠블럼: 교복의 왼쪽 가슴팍에 항상 달려있는 멋진 엠블럼은 내 기억으로 1기 학생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디자인해 주신 거였다. (아니면 어떡하지) 당시 고양국제고 홈페이지 어딘가에 디자인 초안과 다른 옵션들이 올라와 있던 것 같은데 홈페이지가 리뉴얼되었는지 찾아볼 수는 없지만, 능력자 학부모님께서 직접 로고를 디자인해 주셨다.
당시에도 몇 가지 후보군 중에 투표를 했었고, 특히 저 월계수가 둘러싼 엠블럼이 굉장히 예뻐서 교복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학부모가 로고를 디자인하는 학교라니! 다시 생각해도 재미있다.
c. 교가: 교가를 당시 음악 선생님이셨던 이요한 선생님께서 작곡, 당시 교장 선생님이셨던 이영철 교장 선생님이 작사하셨다. 이요한 선생님이 직접 녹음하신 음원을 대강당에서 처음 들었던 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여러모로 강렬...) 그 때문인지 대부분 오래된 학교의 교가에는 100년 산 느티나무(?)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데에 반해, 고양국제고는 "앞으로 나아가자"라는 메시지가 강하다.
심지어 생각보다 노래가 간단하지만 임팩트가 세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교가를... 같이 만드는 학교라니...!
d. 커리큘럼: 이쯤에서 갑자기 특목고 101을 해보자면, 당시에는 국제고가 많이 없었다. 지금도 개수로 비교하면 외고가 국제고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안다. 이렇듯 흔치 않기 때문인지 고려대에서 고양국제고를 나왔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아 외국인/국제학교?" 혹은 "고양외고랑 어떻게 달라?"였다.
설명을 해보자면, 국제학교는 보통 "International"이 붙는 SIS, YISS, SFS와 같은 학교들이다. 학생 본인 혹은 학부모가 외국 시민권 또는 영주권이 있는 경우에만 입학이 가능하다. (기준은 학교마다 다르다고 들었다) 때문에 철저하게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미국의 고등학교처럼 프롬을 진행하는 등, 한국식 특목고랑은 결이 좀 다르다.
고양외고 등의 외고와 차이점은, 설립 취지, 더 실용적으로는 커리큘럼이 다르다는 점이다. 외고는 보통 1학년때부터 전공 언어를 정해서 3년간 해당 언어를 깊게 "전공"하는 반면, 국제고는 보통 전공 언어보다는 제2, 제3외국어까지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대신 "국제"가 들어가는 과목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국제법, 국제경제, 국제정치 등의 과목이 개설되고 별도의 커리큘럼을 따라간다.
예를 들어, 고양국제고는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가 개설되어 있고 그중 2개를 선택해서 1학년때 하나, 2학년 때 하나, 그리고 3학년때는 학기마다 하나씩을 다시 배우는 형태였다. 반도 이걸 따라가서 친구들끼리 "중스", "일스" 이런 식으로 부르곤 했다. 다만 일본어가 가장 인기가 없어서 학년마다 1-2개 반만 형성되었던 것 같다. (한 학년에 8개 반)
1기 당시에는 국제과목의 틀이 딱 잡혀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서 굉장히 다양한 것들을 선생님들과 시도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어로 국제 정세와 관련한 아젠다에 대해 토론해야 하는 (국제정치였나...) 수업이 재미있었다. 영어도 A와 B로 나뉘어 뭔가 다른 것을 배웠는데 졸업 11년 차는 이제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다만 모두가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내신 따기 정말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꼭 국제 과목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토론, 발표, 그룹 활동 수행평가 등등 적극적으로 활동할 일이 정말 정말 아주 매우 많다. 좀 극단적이다 싶을 정도로 많아서, 다른 국제고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에서 만난 타 국제고 친구들 보면 그런 것 같긴 한데 - 베프가 서울국제고 출신이다) 고양국제고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이라면 크게 고민해 봐야 할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국제고 중에서도 청심국제고와 다른 학교들은 결이 다르다. 이름부터 청심국제고는 "Academy"가 들어간다. 당시 공립국제고는 서울국제고, 인천국제고, 부산국제고, 동탄국제고, 그리고 고양국제고가 있었고 (세종국제고와 대구국제고는 이후에 생겼다) 이들은 함께 국제고 학술제도 매년 진행한다. 청심국제고는 청심중학교에서 이어지는 사립학교이고 커리큘럼도 조금 달라서인지 항상 함께하지 않았다. (우리랑 안 놀아준 걸 수도...)
e. 학생회: 나는 2대 학생회 국제교류부 부장으로 활동했다. 2기가 들어오고 1기가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학생회를 확장하여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2대 학생회가 굉장히 활동적으로 이것저것 일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그냥 내가 해서 그렇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이걸 꼭 가져오고 싶었던 이유는 당시에 활동하면서 내가 만들었던 두 가지 활동이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살아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활동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니 진짜 감회가 새롭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위와 밑의 국제교류부 공식 활동에서 "쿨록"과 "쿨릿"이 그것인데, (다시 봐도 작명센스 무엇... 반성하자)
쿨록은, 매달 국가를 선정해서 해당 국가를 소개하는 책자(라기엔 엄청 크고 두꺼운 전지를 복도에 붙여놨었다)를 만들어 게시하고, 정해진 날에 반 대항으로 해당 내용을 기반으로 퀴즈를 열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는 반에게 상품을 주는 활동이었다. 이걸 여전히 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학생회 페이스북이나 국제교류부 인스타그램을 보니 여전히 굉장히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다.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쿨릿은, 쿨록에서 선정한 국가의 음식이 달에 한 번 특식처럼 급식에 나와서 체험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예를 들어 인도가 주제였으면 인도 커리와 탄두리 치킨이 점심에 특식으로 나오는 식. 실제로 인도를 다루어서 탄두리 치킨을 먹은 기억이 있다.
특히 급식과 연관이 되는 쿨릿을 아무리 학생회여도 어떻게 학생 나부랭이가 추진할 수 있었냐, 한다면 당시에 영양사 선생님이셨던 오** 선생님과 그전부터 친했었다. 선생님이 항상 밝게 맞이해 주시고 예뻐해 주시는 게 좋아서 내가 잘 따랐다.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안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부탁을 드렸었는데, 흔쾌히 도와주시고 정말정말 애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사실 다른 국가의 음식이라는 게 학생들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탓에 기숙사 학교 급식에서 진행하기 힘든 건데 지금 생각해도 많이 감사하다. 졸업식 때 같이 사진도 찍었었는데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Culture의 CUL 말고 뒤에 부분이 뭐의 약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시는 분 알려주세요)
물론 당연히 이걸 부장이었던 내가 혼자 만들지는 않았고, 2기 부원 두 친구와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나갔었다. (차장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면접을 보고 경쟁을 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차장이 있었나...?) 당시 작명을 하면서도 "쿨록 쿨록..." 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다들 잘 지내려나!
f. 동아리 (+ 동아리 발표회): 대망의 동아리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고양국제고의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크게 학술동아리와 공연동아리로 나뉘는데, 나는 당시 학술동아리로 모의유엔 동아리를 만들었다. ENA (Enter Nation All)이라는 이름의 동아리였고, 나 스스로가 방학마다 각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모의유엔 대회를 나가면서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고 물론 토론이나 영어 실력도 느는 알찬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그걸 교내에도 전파하고 싶었다.
고맙게도 몇 명의 친구들이 들어와 줘서 모임마다 주제를 정하고 각자 나라를 선정해서 모의유엔 형식의 토론 활동을 했었다. 실제 유엔 총회에서 회의의 마무리는 법안/결의안 (resolution)을 쓰고 투표로 채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에서도 작고 귀엽게나마 이걸 쓰는 것까지 연습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고 알찬 활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토론대회가 더 유행을 해서인지 3기부터는 의회식 영어토론 동아리로 형식을 바꾸었고 동아리 이름도 Protagonist로 바꾼 것 같다. (주인공이라니 아주 강렬한 이름이 마음에 든다)
내가 애정을 갖고 만든 동아리를 제외하고도 훌륭한 학술 동아리들이 많았지만, 사실 고양국제고의 큰 특색은 공연동아리였다. 그중에서도 연극부와 뮤지컬 동아리가 기억에 남는데, 이유는 공연동아리들이 매년 심혈을 다해 준비하는 "동아리발표회"를 무려 고양어울림누리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고양어울림누리는 고양시의 대표적인 문화공간 두 곳 중에 하나로, 실제로 공연을 많이 주최하는 곳이다. 어쩌다 이런 엄청난 곳을 섭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고등학교의 대강당과는 스케일이 다른 곳에서 실제로 공연을 올려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양어울림누리에 앉아서 친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공연을 보고 있자면 너무 멋있어서 전율이 흐른다!
이때문인지 1기 친구들 중에서도 각본이나 연출가를 꿈꿨던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 중 몇 명은 실제로 지금 작가나 PD로 활동하고 있다.
g. 기타 등등 (e.g., 국제고 학술제, 라디오 토론대회): 마지막으로는 기타 등등인데,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너무 많은 것들이 있으니 내가 했던 활동 위주로 써보려 한다.
국제고 학술제는 학생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기타에 넣었다. 청심을 제외한 전국의 공립국제고가 1년에 한 번씩 모여서 특정 주제를 가지고 학술제를 개최하는 행사이고, 매년 학교마다 돌아가면서 주최를 한다. 우리가 1기였던 2011년에 인천국제고에서 개최를 했고, 다음 해인 2012년에는 고양국제고가 개최를 했다. 운이 좋게도 이 때 학술제 2부 MC를 맡아서 너무 재밌게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규모가 큰 만큼 킨텍스에서 진행을 했었고, 각 학교별로 고3을 제외한 인원 거의 모두가 버스를 빌려서 참관하러 온다. 앉아있는 학생들은 토론에 직접 참여는 못하지만, 질문은 할 수 있다. (왜 그랬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2011년에 인천국제고가 개최한 학술제 때 우리는 1기라서 토론자로 참여하지 못하고 참관만 했는데, 똑같이 1기였던 동탄국제고는 토론자로 참여해서 분개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분한 마음에(?) 질문 시간에 열심히 손 들고 질문을 했었고 선생님들이 칭찬해 주셨다(??) 같이 속상하셨던 듯)
진행자 및 각 학교 대표 토론자는 하루 전날 개최학교에 모여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밤에는 해당 학교 기숙사에서 하루 지내면서 아주 알찬 시간을 보낸다. 아마 지금도 학교 대표를 뽑는 경쟁은 치열하겠지만, 정말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던 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 행사다.
그리고 1기로서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무언가 기회를 잡고 싶어 하면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당시 TBS 라디오 영어방송에서 고등학교 대항 토론 프로그램에서 아마 학교로 섭외가 왔었고, 학교별로 여학생 1명 남학생 1명 나가는 방송에 후배와 같이 나갈 수 있었다. 학교 이름을 걸고 방송을 타는 자리는 처음인지라 영어 선생님께서 신경 써서 같이 준비를 도와주셨는데, 운 나쁘게도(?) 대원외고랑 붙게 되어서 약 1시간 방송에 잘 토론하다가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연했던 대원외고 학생들이 당시에 아주 빡세기로 소문났던 각종 토론대회를 휩쓸던 친구들이었어서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 (구차하다 구차해)
아무튼 요지는 사진에서 보이듯 우리는 선생님께서 직접 준비를 돕고 동석까지 해주실 만큼 크게 마음을 써주셨다는 것이다. 1기여서 선례가 없는 만큼, 1기니까 하나둘씩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선생님들께서도 같이 가져주셨던 것 같아 감사하다.
iii. 고양국제고 특성과 추천 이유
애정을 담아 쓰다 보니 꽤나 길어졌는데, 결론적으로 졸업한 지 11년이 지났어도 이렇게 많은 일들이 생생히 기억날 만큼 고양국제고는 내게 좋은 고등학교였다는 것이다.
졸업을 해서 대학을 다니고 또 컨설팅만 4년을 한 사회인(...)으로 지내다 보니 여실히 느껴지는 고양국제고의 특색, 그리고 장점은 한 마디로 "Proactiveness"이다. 한국어로는 진취적/적극적 정도로 해석되는 것 같은데, 무언가를 나서서 적극적으로 개척해 내는 성향이 다니기에 매우 좋고, 그렇지 않은 학생이어도 온갖 커리큘럼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기를 수밖에 없게 되는 학교다.
대학 입시 측면에서는 생활기록부에 쓸 만한 활동이 많고, 선생님들도 이걸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시기 때문에 결국 "수시에 강하다"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아래 표에서 보면 2023, 2022년도에 각각 14, 12명의 서울대 합격생 중 100%가 수시 전형이었다. (아니 근데 언제 200명 중에 14명이나 서울대를 가는 학교가 된 건지??? 재수 삼수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나 때 - 라떼 - 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라서 찾아보고 매우 놀랐다)
물론 저 중에는 최저를 맞추고 논술로 합격한 친구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내가 다닐 때에도 타 학교보다 정시에 올인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았다. 그래서인지 사회에서 외고 친구들은 조금 더 점수 경쟁이나 시험에 강한, 예를 들어 내신이나 학점을 잘 받고 로스쿨에 진학하는 류의 친구들이 많은 반면, 국제고는 나처럼 이것저것 활동해 보고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는 류가 더 많았다. (학점은 아듀...) 물론 나의 표본으로 절대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학교 차원에서 장려하는 인재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래서 이런저런 활동하기 좋아하고 무언가 더 넓은 세상을 몸으로 경험해보고 싶은 친구들이라면 고양국제고를 적극 추천한다.
여태껏 썼던 글 중에 아마 제일 긴 글인 것 같은데, 흐름을 중간에 끊고 싶지 않아서 한 개의 글에 꾸역꾸역 넣어보았다.
결국 "고양국제고 - 고려대" 동문회를 만들면서 어떻게 1기인 나까지 잘 찾아내어 연락을 준 후배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쓸 계기도 생긴 것이라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끄러우니까 홍보는 하지 않아요...)
다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학창 시절을 떠올리라고 하면 중학교는 떠오르는 게 거의 없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떠오르곤 한다. 그만큼 강렬했고 치열했던 시기였다.
당연히 미성숙한 청소년들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도 많고, 기숙사 학교다 보니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큰 편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것들보다는 즐겁게 적극적으로 생활했던 기억들이 더 크게 남는다. 그냥 살아가는 데 있어서 힘이 되는 근간을 잡아준 곳 같다.
그래서 더 애정 혹은 애증 하는 고양국제고를 11년 전에 졸업한 1기 졸업생의 수기는 여기까지!
(마무리는 자료 찾다가 찾은 2015, 2016년도 멘토링 당시 사진 - 나 총동창회 열심히 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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