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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fine dining

정식당 디너 - 미슐랭2스타 / 한식 파인다이닝 / 청담동

by 캐니킴 202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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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하면 첫 월급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처음으로 큰돈이 들어오는 설렘과 더불어, 이 돈을 누구와 어떻게 써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자잘한 걸 조금씩 사느라 나중에 기억도 안 남을 것보다야 소중한 사람들과 통 크게(?) 써야겠다 싶더라.

 

그래서 월급날 직후로 짝꿍과 다녀왔다. 미슐랭 2스타에 빛나는 한식 파인다이닝, 정식당.

 

디너 2인을 예약했고 어쩐 일인지 가장 좋은 룸을 배정받았다. 미슐랭 상패가 있는 방이었으니 가장 좋은 방이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도 더 좋으니까!)  가격은 5코스에 인당 155,000원이고 여기에 김밥 16,000원씩을 추가했다.

 

welcome drink!

 

식전 드링크로 상큼한 차가 나왔다. 수박 주스라길래 거부감이 들었는데 레몬향도 나고 괜찮았다. 홉! 하면 다 마실 크기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부러 잎을 하나 동동 띄워 주셨다. 어렸을 때 지나가는 나그네가 물을 청했더니, 급하게 마시면 체하니 이파리를 띄워 준 처녀에게 반해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이 사람들 섬세해!

 

아뮤즈부쉬 5종과 한우 카르파치오

차는 진작에 다 마시고 나서 벽이 막힌 방에서 신나게 사진도 찍다보니 아뮤즈부쉬를 주셨다. 다섯 가지의 귀여운 한입거리와 한우 카르파치오가 멋진 그릇에 나온다. 가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먹고 마지막에 카르파치오를 먹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가장 왼쪽에는 트러플 계란찜이었고, 무슨무슨 튀김, 푸아그라와 유자소스, 무슨무슨 감초, 샤베트 순서이다. 트러플 쳐돌이인 우리는 계란찜을 먹자마자 눈을 마주쳤다. (이거다...!) 푸아그라도 맛있었다. 한우 카르파치오는 돌돌 말아서 먹으면 되는데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입안을 리프레시해주는 듯 괜찮았다.

 

사실 모든 메뉴 중에 아뮤즈부쉬가 1~2순위로 맛있었다. 짝꿍도 의견이 동일했는데 이게 갈수록 배가 불러서인지 조금 애매하지만 아뮤즈부쉬의 임팩트가 강렬하긴 했던 듯하다!

 

애피타이저 아스파라거스 (물회로 변경 가능하다)

아스파라거스가 애피타이저로 나왔는데 음... 큰 임팩트는 없었다. 정말 애피타이저 느낌으로 우적우적 잘 씹어 먹었다.

 

이름값 하는 맛있는 김밥

요놈은 추가해서 시켰다. 16,000원짜리 김밥이 얼마나 맛있나 보자! 했는데 아 진짜 맛있었다. 반박불가. 어찌 된 게 이름도 '맛있는 김밥'이다. 이 사람들도 아는 거다. 자부심이 자부심이...

 

김은 불에 익혔는지 바삭하게 씹히는 질감이다. 속에는 양념된 밥과 불고기와 트러플이 잔뜩 들어가 있다. 옆에는 트러플 소스도 왕창 나오는데 짜주신 크기가 딱 김밥을 직각으로 푹 찍어 먹으면 김밥 단면에 빠짐없이 소스가 뭍는 정도이다. 그러니 아낌없이 왕창 찍어 먹을 수밖에... 

 

이 김밥이 진짜 엄청나게 맛있었다. 우리는 결국 이 김밥을 더 먹고 싶어서 나중에 이런 김밥을 타파스로 파는 곳을 또 찾아간다. 거기서 김밥만 2피스짜리 5접시인가 먹었음...

 

작고 귀여운 성게비빔밥

본격 코스의 시작으로 성게비빔밥이 나온다. 처음에는 요 쪼꼬만 거 가지고 배가 차나...? 싶었는데 이건 코스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망각한 오해였다. 밥 양과 성게알 양이 거의 같은 수준으로 푸짐하게 나온다. 비벼서 먹으면 되는데 취향에 따라 조금 짜다고 느낄 수도 있을 듯. 간이 세서 다음 코스가 조금 죽는 느낌은 있다.

 

옥돔 스테이크

솔직히 별 기억에 안 남는 옥돔... 해산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특히 생선구이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 구이 요리가 기억에 남기 쉽지 않다.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2스타에서 보기엔 다소 밍밍한 요리가 아니었다 싶다.

 

메인요리 이베리코 스테이크

찐 메인인 스테이크! 음식이 나오기 전에 직접 썰(?) 칼을 고르게 해 주신다. 멋진 나무 상자를 열면 칼들이 주르륵 누워 있다. 물론 나는 요리기구 알못이기 때문에 그냥 예뻐 보이는 걸로 골랐다.

 

스테이크는 소고기보다 이베리코를 선호하는 편이다. 막입이라 그런지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특별하게 맛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지 않다. (갈비도 소갈비보다 돼지 양념갈비를 좋아하니...) 그래서 가격 대비 이베리코를 먹는 게 더 만족도가 높다.

 

이베리코는 괜찮았다! 다만 개인적으로 가성비 파인다이닝으로 꼽히는 콘피에르의 이베리코 스테이크가 더 맛있었다. 가격 차이는 거의 5배인 걸 생각하면 흠... 전반적으로 뒤로 갈수록 임팩트가 크지 않았다.

 

레몬 샤베트 (아이폰 인물모드 밝기조절 하는 걸 모를 때라 사진이 이모냥)

메인이 끝나면 바로 레몬 샤베트가 나온다! 우리가 식사를 느리게 하는 편인데 맞추어 여유 있게 서빙해주셔서 어느덧 해가 졌다. 사진은 확실히 밝을 때가 더 잘 나온다.

 

샤베트는 개운했다! 약간 민트맛이 섞여 있어서 입맛을 청소해주는 느낌이다.

 

김밥과 더불어 유명한 돌하르방

본격 디저트(?)로 돌하르방이 나온다! 사진에서 보았을 때는 장식인가 싶었는데 쉬폰빵과 흑임자 아이스크림의 조합이었다! 예상치 못한 정체와 예상치 못한 맛이 꽤나 재밌고 담백하니 맛났다! 느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고, 옆에 흙으로 표현된 가루들이 느끼함을 중화시켜 주는 맛이라 균형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파인다이닝이라면 이런 시그니처 메뉴가 꼭 있기를 기대하는 편이다. 아마도 아뮤즈부쉬와 김밥, 돌하르방 외에는 크게 기억에 안 남았던 이유가 다른 데서도 볼 수 있는 모양새였기 때문도 크지 않을까. (라기엔 써놓고 보니 3가지나 시그니처라면 훌륭한 것 같기도 하고...)

 

마무리 디저트

마지막에는 커피 혹은 차와 함께 미니 마카롱과 쿠키, 초콜릿이 나온다. 이때 즈음엔 정말 너무 배불러서 거의 하나도 못 먹고 배만 두들기다 나왔다. 실질적인 코스는 돌하르방에서 끝난 기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밥 > 아뮤즈부쉬 > 돌하르방 순이다. 수미상관 느낌으로 임팩트를 맨 앞과 뒤에 몰아붙이는 대신, 메인은 오히려 플레인했던 느낌이다. 가격 대비 괘씸하게 맛이 없는 코스는 없었지만 2스타의 메인이 인상 깊지 않은 게 내가 막입인가 싶기도 하다. 

 

첫 월급으로 소중한 사람과 좋은 시간을 쌓기에는 충분했다! 서비스도 훌륭하고 가게도 깔끔했다. 여담이지만 우리 방 바로 옆 테이블에 어떤 남자가 여자분에게 어필하려고 하는 대화들이 들려와 재미있었는데,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연인이 아닌 잘 보이고 싶은 사람과 이런 곳을 올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어쩌다 보니 혹평을 쓴 듯한데 전반적으로 맛있었고 정말 좋았다. 자주 가기에는 힘들겠지만 여전히 좋았던 기억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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