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ning/fine dining

테루아 디너 - 가성비 파인다이닝 / 찐 알짜배기 맛집 / 신사역 잠원동

by 캐니킴 2021. 3. 7.
반응형

내게 식사마다 남는 기억의 형태는 다르곤 하다. 어느 곳은 멋진 인테리어가, 또 어떤 곳은 섬세한 서비스가, 그리고 또 어떤 곳은 가격대가 (높든 낮든)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식당 이름은 기억이 안 나도 뭔가 엄청 좋았는데...! 하는 독특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 곳도 있더라.

 

찐한 내공이 느껴지는 알짜배기 요리 구성에 가성비가 엄청난데 내가 자꾸만 이름을 까먹는... 신사역의 테루아다.

 

디너메뉴판 - 셰프님이 직접 들어주신다

디너 8코스에 45,000원이다. (지금은 49,000원으로 가격이 인상됐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괜찮은 파인다이닝으로는 콘피에르와 쌍두마차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가게는 바 좌석만 주르륵 있는 형태이고 신사역 어느 골목에 소박하게 자리 잡았다. 사실 밖에서 보면 소소한 개인 카페 같은 인테리어여서 다이닝이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는 비주얼을 지녔다.

 

셰프님 혼자 모든 요리를 하는 1인 셰프 레스토랑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료 준비를 위해 예약은 필수다.

 

콜키지 해 간 클라우디 베이 - 콜키지 병당 15,000원

역시나 짝꿍과 나는 와인을 미니멈 한 병은 마실 생각이었기 때문에 콜키지를 미리 해 갔다. 화이트 와인 중에 제일 좋아하는 클라우디 베이를 가져갔다. 뉴질랜드 산 소비뇽 블랑 화이트이다. 가격대는 조금 있는 편이나 와인샵에서 사면 나름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정말정말 맛있다!

 

칠링을 부탁드리려 셰프님께 보여드렸더니 단번에 '오 좋은 와인 가져오셨네요!' 해 주셨다. 우리는 와알못이긴 해도 전문가에게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 괜히 뿌듯했다. 그리고 셰프님께도 은근한 친근감이(?) 생겼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초당 옥수수 수프

첫 번째로 자그마한 초당 옥수수 수프와 식전빵이 나온다. 둘 다 굉장히 귀여운 크기로 나오는데, 어차피 식전이니 아쉬울 건 없다. 적당히 따뜻하고 맛있었다. 빵을 수프에 찍어 먹어도 좋다.

 

3가지 전채요리 - 매쉬포테이토, 단호박, 계란찜

전채요리로 귀여운 세 가지가 나왔다. 주전자 모양 디쉬부터 시계 방향 순서로 먹으라고 알려주신다. 명태가 들어간 매쉬포테이토는 명태가 곁들여진 게 특이했다. 그라탕 느낌의 미니단호박은 아래에는 당근 퓨레가, 위에는 치즈가 얹어져 있었다. 와사비가 올라간 새우계란찜이 맛있었는데, 원래 스시집 가서도 달콤한 계란찜을 제일 좋아하는 유딩 입맛이라 그런지 요 폭신한 계란찜이 좋았다.

 

해산물 플레이트 - 새우요리

해산물 플레이트는 날마다 메뉴가 바뀐다. 우리가 먹었던 이 친구는 새우이고 위에 와사비가 얹어져 있다. 새우가 통통하니 씹는 식감이 좋았다.

 

된장 베이스의 생면 파스타

생면 파스타는 특이하게 된장이 베이스였다. 치즈와 무슨무슨 허브 그리고 된장소스의 조화가 좋았다. 무엇보다 생면 파스타인데다 직접 면을 뽑아내셔서 굉장히 쫀득했다. 소스가 자작하니 밑에 있지 않은대도 이미 잘 스며들어 있었다.

 

시킨 와인 - Cabo de Roca Riserva 29,000원

코스가 반절도 안 지났는데 가져온 클라우디 베이 한 병을 이미 다 마셔버렸다. 이 날 왜인지 신이 나서 '마실 거면 두 병 마셔!' 하면서 달렸던 기억이 있다. (매일 그렇듯...) 셰프님의 추천을 받아 화이트 와인을 한 병 주문했다. 포르투갈산 Cabo da Roca Riserva라는 와인을 시켰다. 가격이 무려 29,000원으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와인 시켰다고 콜키지도 무료로 해 주셨다! 29,000원에 와인 두 병이라니 감격스럽다. (가져간 와인 가격은 매몰비용이므로)

 

화이트 와인 중 제일 좋아하는 클라우디 베이를 마시고 마셔서인지 임팩트가 엄청 강하진 않았지만 괜찮았다. 전반적으로 조금 센 느낌이 있었다.

 

아란치니

나는 아란치니를 정말정말 좋아한다. 아란치니를 잘 만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양식으로는 검증되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역시 테루아도 아란치니가 맛있었다. 속에는 먹물 색의 속과 치즈가 꽉 차 있다. 겉바속촉 정말 맛있었다.

 

복숭아 스시(?!)

스테이크가 나오기 전, 리프레시 할 수 있도록 채소스시가 준비된다. 우리는 아주 상큼한 복숭아스시였다. 생전 처음 듣는 과일과 초밥의 조화에 약간 당황했지만 이미 와인 두 병에 그 전까지의 음식으로 셰프님께 절대적 신뢰를 갖게 된 우리 둘은 잔말 않고 먹었다.

 

뜻밖에도 복숭아의 상큼하고 아삭한 식감과 밥, 김의 조화가 좋았다. 말 그대로 리프레싱하기에 좋았다. (근데 이걸 10피스씩 해서 식사로 먹기엔 힘들 듯 하다)

 

메인요리 - 한우투뿔스테이크

메인요리로 한우투뿔스테이크가 나왔다. 수비드된 고기여서 빨갛다. (익은 것 맞다) 아래 검정 물체는 숯소금이고 여기에 찍어 먹으면 된다. 부드럽고 야채와 소금을 얹어 먹으니 적당했다. 양도 괜찮았다.

 

스테이크를 먹고 나면 식후 드링크로 리몬첼로라는 레몬향 술을 주신다. 이름도 색상도 귀엽지만 이래 봬도 35도이다. 스트레이트로 마실 건지 탄산수로 마실건지 물어보시는데 도수를 듣고 겁먹어서 탄산수에 섞어 마셨다. 귀여운 서비스였다.

 

디저트1 - 크림브륄레

개인적으로 설탕맛이 마구 나는 디저트류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테루아의 크림브륄레는 괜찮았다. 위의 설탕층을 톡톡 깨서 먹으면 된다.

 

디저트2 - 마들렌

반면 마들렌은 마들렌성애자 수준으로 좋아한다. 빵순이도 디저트순이도 아니지만 어디에나 마들렌이 있다면 꼭 하나씩 사서 먹는다. 오죽하면 짝꿍은 이제 '마들렌'으로 주변 카페를 검색해 오고, 집으로 선물을 보내줄 때에도 꼭 마들렌을 섞어 보내준다. (센스쟁이 너무 고마워!)

 

이 곳 마들렌도 직접 구워 주시는데 아주 괜찮았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긴 하지만 마무리까지 내가 좋아하는 마들렌이 심지어 맛있게 나와서 기분 좋았다.

 


쓰다 보니 왜 이 곳이 내게 그렇게 극호의 인상으로 남았는지 깨달았다. 코스 하나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이 섞여 있는 데다가 기대치를 넘어선 맛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요리들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일 재료가 바뀌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셰프님의 고민과 안전한 실험정신(?)이 가득 담겨 있는 것도 좋았다. 실험을 해서 맛이 없으면 안 되는데 실험을 해도 다 맛이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짝꿍과 나는 이 셰프님이 몇 년 후에는 부산의 머스트루 셰프님 같은 분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보았다. 엄청난 알짜배기 실력을 지니고 그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훌륭한 서비스와 요리를 대접하는 식당 말이다. 아직은 연차가 오래되신 것 같진 않아서 분명 나중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캐치테이블에서 예약을 해야 하고 다음 달 예약은 매 월 넷째 주 금요일에 오픈된다고 하니, 어느새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예약이 가능하다면 무조건 다시 가고 싶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