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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fine dining

콘피에르 디너 - 양식 오마카세 / 가성비 파인다이닝 / 도산공원

by 캐니킴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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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다이닝은 꼭 가격대가 10만원 20만원이어야 하는 식사는 아닐 테다. 독창적인 음식과 나름의 고민이 담긴 컨셉, 그리고 훌륭한 서비스가 있다면 그 곳이 파인다이닝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개똥철학)

 

그런 의미에서 합리적인 가격대로는 견줄 데가 없는 파인다이닝이 새로 생겨 다녀왔다. 역시 최고인 짝꿍의 리서치 덕분에 무려 가오픈 기간에 다녀오는 호화를 누렸다. 네이버로 예약할 수 있고 가오픈 기간에는 자리를 한정적으로 받아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했다.

 

이제는 너무 인기가 많아진 가성비 최고 파인다이닝, 도산공원의 콘피에르이다.

 

이 종이 뒷면에 QR코드가 있다
QR코드를 찍으면 나오는 PDF 메뉴판

콘템포러리를 지향한다길래 무슨 의미일까 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이해했다. 종이 메뉴판 대신 자리마다 위치한 QR코드를 찍으면 PDF 메뉴판으로 연결된다. 

 

런치와 디너 모두 단일코스로 진행되고 디너는 무려 59,000원이다. 아뮤즈부쉬 4종을 포함해 총 10코스임을 감안하면 벌써부터 엄청난 가성비의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메인은 2가지 중 선택할 수 있다.

 

자리는 모두 바 좌석뿐이다. 가운데의 주방을 중심으로 'ㄷ'자로 바 좌석이 놓여있다. 자릿세가 높은 도산공원이니 만큼 이런 식으로 대여료 고정비를 줄인 듯 하다. (직업병)

 

아뮤즈부쉬 3종 - 왼쪽부터 감태부각, 토마토마리네이드와 치즈, 옥수수크림 스낵

아뮤즈부쉬 4종을 각각 계산하여 10코스이긴 하지만 그 중 3종은 한 번에 나온다. 먹는 순서는 특이하게 왼쪽, 오른쪽, 그리고 가운데이다. 첫 번째 감태 스낵은 타피오카펄로 만든 부각과 사바용 소스(달걀 노른자와 오렌지)가 곁들여 져 있다. 식감이 독특했는데 부각은 크리스피하게 씹히면서 소스가 가미되어 씹는 맛이 중화되었다.

 

다음으로 오른쪽의 옥수수크림 스낵은 버터 파우더와 수제 카라멜 필링이 잔뜩 들어가 있다. 사실 이건 조금 느끼했고 과하게 크리미한 면이 있었다. 보통 아뮤즈부쉬는 상큼하고 가벼운 느낌이 많은데 그보다는 무거운 편이었다. 더불어 재미있는 것은 오픈 주방이기 때문에 셰프와 그의 친구들(?)이 무얼 하는지 다 보이는데, 요 스낵만 필링하는 분이 계셨다. 아마 스낵의 겉 쿠키는 전날 만들어 두고 필링만 그 때 그 때 넣는 것 같았다. 이 분 뿐 아니라 다들 각자 하나의 요리 혹은 요리의 특정 부분을 맡아 그것만 반복적으로 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던타임즈 같기도 하고) 이렇게 공장식(?)으로 만들면서 가성비를 극대화 한 듯 하다.

 

마무리 토마토마리네이드는 예상한 대로 산뜻했다. 바질워터에 마리네이드했고, 옥수수크림에 느끼해진 맛을 씻어 주는가 싶더니만 치즈가 함께 있어서 다시 조금은 크리미한 상태로 돌아갔다.  (카프레제를 지향한다는데 카프레제를 옥수수크림이랑 먹진 않잖아요!)

 

아뮤즈부쉬 4 - 관자와 매생이 폼

관자와 매생이 폼은 말 그대로 관자 위에 매생이 폼이 올라가 있다. 폼이 얹어진 게 신기했는데 관자를 조금씩 잘라 폼에 얹어 먹으면 몽글몽글하다. 소스의 폼화(?)를 시킨 듯 하다.

 

콜키지로 가져간 섭미션 까버네소비뇽 레드

콜키지도 합리적인 2만원이다. 구비된 와인 리스트도 있긴 했지만 짝꿍과 나의 최애 와인, 섭미션 레드를 가져왔다. (가성비엔 가성비 조합) 섭미션은 라벨이 굉장히 최근에 생겼고 나파밸리에서 까버네소비뇽으로 만들어 졌다. 와인샵 같은 데서는 2~3만원대로 구할 수 있다. 바디감, 드라이함, 향 모두 정말 적절의 끝판왕이라 어느 모임에 들고 가도 호불호 없이 환영 받는다. (한 번 모임에 가져갔다가 그 모임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구매했다) 비슷한 느낌으로는 텍스트북 레드와인이 있는데 가격 차이가 거의 2~3배는 나는 걸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친구다.

 

짝꿍과 섭미션을 발견한 게 2020년 5월 즈음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신상이라 레어한 친구였다. 이후로는 소문이 났는지 슬슬 식당에서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라벨지가 빨간색인 버전도 있는데 그건 무척 실망스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화이트 샤도네이도 괜찮다.

 

고등어와 컬리 플라워 그리고 오묘한 스팀(?)

연기가 퐁퐁 나오는 비주얼이 신기한 디쉬이다. 고등어 위에 컬리 플라워와 허브 등을 얹은 건데, 언뜻 보면 생선 요리인지는 전혀 모르겠고 드라이아이스에만 눈이 간다. 

 

고등어는 비리기 쉽지만 허브가 가미되어 비린 맛은 크게 안 느껴졌다. 솔직히 이 디쉬는 정말 비주얼이 신기했는데, 다 먹을 때 즈음이면 저 연기를 내던 드라이아이스들이 아래에서 자그마해진 상태로 나타난다. 그들이 녹은 물이 있는데 거기서 퐁퐁 버블이 나면서 약간의 물을 맞을 수도 있다(!)

 

초점 나간 수비드한 배추

두 번째 에피타이저로는 무려 배추가 나온다. 수비드 기법으로 요리했고 해바라기씨 크림 치즈, 감자 크럼블, 올리브가 곁들여져 있다. 파인다이닝에서 배추가 메인인 요리를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서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래도 수비드는 수비드, 역시 부드러웠고 크림치즈가 땅콩 버터같은 맛이 나는 반면 감자 크럼블이 바삭바삭 씹히는 맛을 더해 꽤 괜찮았다. 

 

동치미 콜드 파스타

다음은 드디어 상큼한 맛의 디쉬가 나온다! 배추랑 비슷한 맥락으로 독특하게 동치미를 모티브로 한 콜드 파스타이다. 카펠리니면에 닭 편육이 메인이고, 마리네이드한 토마토와 허브 부케가 상쾌한 맛을 더한다. 국물 위엔 파슬리 오일을 동그랗게 톡톡 뿌려 주신다. (갑자기 사진의 방향이 바뀐 이유도 짝꿍의 오일이 더 예쁘게 뿌려져 있어서 그걸 찍었기 떄문이다)

 

먹을 때에는 허브 부케를 육수에 담가 면을 풀어 먹으면 된다. 허브가 정말 부케마냥 자그마한 꽃과 함께 묶여 있어서 굉장히 섬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 파스타는 너무 시큼하지도 않고 맛있었다. 특히, 닭 편육이 꽤나 알차서 씹는 질감도 있고 전반적으로 잘 구성된 디쉬였다.

 

메인A - 닭가슴살과 당근 퓨레

메인은 닭가슴살과 삼겹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나랑 짝꿍은 각각 하나씩 시켜 조금씩 나눠먹기로 했다. 누가 시켰는지 기억이 안 나는 닭가슴살은 동그랗고 예쁘게 여러 피스가 나온다. 우선 비주얼은 합격이다. 수비드한 닭가슴살, 당근퓨레와 더불어 샬롯이라는 양파류의 채소 샐러드가 함께 나온다. 닭가슴살은 수비드할 때에 겉면에 닭껍질로 감싼 것이 특이하다.

 

메인B - 삼겹살과 양파 퓨레

사실 이 삼겹살이 대박이었다. (역시 메인 두 개 다 시켜보길 잘했지 칭찬해 짝꿍!) 마찬가지로 수비드한 삼겹살에 펜넬이라는 허브로 만든 소스가 가미된다. 동치미 파스타와 비슷하게 뿌려진 오일은 대파 오일이다.

 

일단 삼겹살이 말도 안 되게 부드러워서 포크로 살짝 누르면 뭉게지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입 안에서 식감도 없이 무너지진 않는다) 수비드라면 응당 부드럽고 맛있어지지만, 먹어본 수비드 음식 중 단연 TOP 3에 든다. 파인다이닝에서 오히려 메인 요리를 맛있게 먹은 적이 별로 없는데, 여기는 메인 음식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콘피에르는 시즌마다 메뉴가 조금씩 바뀌어서 한 번 더 갔는데, 그 때는 둘 다 돼지로 골랐던 것 같을 정도로... (확실치 않지만 히히)

 

코코넛 샤벳과 식혜

디저트는 두 종류를 한꺼번에 받았다. 원래는 하나씩 나오는 것 같은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두 개를 같이 주셨다. 이게 조금 아쉬웠는데, 전반적으로 시간 분배가 굉장히 칼 같이 지켜지고 조금 급한 느낌이 있었다. 나름대로 1부 2부 이런 식으로 시간대를 나누어 특정 시간대의 손님들은 이후 시간대가 들어오기 전까지 자리를 빼줘야 하는 듯 했다. 다만 여기서 아쉬운 점은, 우리가 예약했을 때에는 20~30분 단위로 네이버 예약을 했기 때문에 정확히 1부의 시작 시점에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약한 후에 바뀐 정책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손님들에게 사전에 연락해서 시간을 조정하든가, 사전 공지가 제대로 나가든가 했어야 했다. 덕분에 마지막의 이 디저트는 시간에 쫓기는 마음에 별로 맛이 기억 나지도 않는다.


다녀온 소감은, '가성비는 가성비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디쉬의 플레이팅은 예쁘게 나오고 나름의 코스가 있긴 하나 시간 배분과 서비스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느낌은 있었다. 그리고 전반적인 디쉬 구성이 크리미하고 헤비한 것이 많아 다소 느끼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특히 바 좌석 안쪽에서 정말 많은 인원이 일사분란하게 본인 파트의 요리를 반복적으로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뭔가 정성을 다 해 디쉬 하나하나를 만든다는 느낌보다는 공장의 부품처럼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보니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며 먹는 손님 입장에서 특별한 디쉬를 서빙받는다는 기분을 제대로 못 받은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오픈 초기였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던 중에 나온 시행착오로 보이긴 하지만, 가성비일지라도 파인다이닝을 추구하는 곳에서 이런 대응과 서비스는 실망스러웠다. 때문인지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장소라기 보다는 가끔 코스요리가 먹고 싶을 때에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럼에도 갓성비가 어마어마하므로 시즌별로 메뉴가 바뀔 때 종종 갈 듯 하다. 초창기의 시행착오는 가라앉았기를 바랄 뿐.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콘피에르에 다녀온 후 내 개인 인스타에 '갓성비 파인다이닝'으로 소개하며 올렸는데 몇몇 안 친한 친구들이 내 게시글에는 아무 반응 없이 조용히 콘피에르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으면서도 내가 추천하는 곳을 다들 믿고 가나보다 싶어 나름 뿌듯(?)하기도 했던 해프닝이다. (꼭 그래야만 했냐!)

 

그런 의미에서 콘피에르는 여전히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서비스와 체제가 안정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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