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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fine dining

다이닝포레 디너 - 전통주 페어링 / 신생 파인다이닝 (feat. 제주오메기술) / 논현동

by 캐니킴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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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과 나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다. "남들이 잘 모르지만 맛있고 퀄리티 대비 가격대도 괜찮은 맛집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짝꿍이 열심히 찾으면 나는 최선을 다해 먹는 역할)

 

이미 미슐랭인 곳들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게 증명이 되어 늘 어느 수준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제 막 탄생했거나 크고 있는 곳을 발굴하는 데에서 또 다른 재미를 찾는다. 궤도에 오른 식당과는 다른 풋풋함(?) 이라든가, 셰프님과 웨이터의 열정이라든가, 메뉴가 계속 개발되고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렇게 알게 된 곳과는 특별한 인연을 맺기도 한다.

 

우리에게 유독 특별한 기억이 있는 이 곳은 전통주가 페어링되고 웨이터분(a.k.a 대표님)이 엄청나게 열정적인 논현동의 신생 파인다이닝, 다이닝포레이다.

 

예쁜 들꽃이 살포시 메뉴에 꽂혀있다. 청첩장을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고 싶다.

자연 속에서 모든 원재료를 찾고 최대한 그 맛과 묘미를 살려내기를 지향한다. 그에 걸맞게 자리에 앉자마자 소소하지만 사소하진 않은 들꽃이 먼저 우릴 반긴다. 직접 따오시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너무 예쁘고 기분 좋은 웰컴이었다. 

 

자리마다 놓인 꽃의 종류도 다른데, 내 눈에는 짝꿍의 것이 더 예뻐서 결국 바꾸어 끼웠다.

 

괜히 이게 더 이쁘다고 바꾸자 했다. 짝꿍 고마워!
매일 바뀌는 메뉴판

 

언뜻 보면 11만원이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코스를 잘 보면 디저트까지 무려 11코스인데 11만원이다. 코스 하나당 1만원 수준인 것. 전통주 페어링을 하면 5만원인데 우리는 더 마음껏 마시고 싶어서(!) 바틀로 따로 시켰다.

 

우리는 한여름인 2020년 7월에 디너로 갔는데 메뉴판을 매일 프린트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메뉴가 조금씩 바뀐다. 실제로 우리가 다녀온 이후 후기를 보면 플레이팅이나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개발하는 중이신 듯하다. (이런 게 바로 신생 다이닝을 찾아다니는 묘미 중 하나. 흡사 성장형 캐릭터를 키우는 기분 겜알못)

 

초당옥수수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첫 번째 술, 장성만리

첫 코스는 초당옥수수와 방울토마토 퓨레이다. 옥수수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방울토마토의 상큼함이 얹어져 너무 헤비하지 않다. 위에 올려져 있는 새싹 같은 친구들은 무슨무슨 허브인데, 이 분들이 직접 농장에 가서 따오신다고 한다!

 

실제로 식당 바로 왼쪽에 작은 정원 공간이 있고 거기서도 허브를 소량 키우고 계셨다. 그냥 두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인공태양광도 설치되어 있었다. 자연 친화적인 원재료로 요리를 하고자 한다셨는데 바로 옆에 정성과 전문성으로 키우는 원재료가 보이니 재미도 있고 더 신뢰도 갔다.

 

첫 번째 술은 장성만리를 시켰는데 화이트 와인 같아 음식에 매우 잘 어울렸다. 전통주를 와인잔에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우리는 이때부터 이미 신이 나기 시작했다. (이미 취할 작정)

 

가리비와 감태, 생들기름

다음은 인어공주가 보물을 숨겨두었을 듯한 엄청난 수조 플레이트에 가리비가 나온다. 식감이 정말 재미있었는데, 우선 감태가 말린 것이 아니라 미역 같이 적신 상태였다. 가리비도 원 형태 그대로가 아니라 약간 쪼개서 포개어진 상태로 나온다. 즉, 탱글한 것 + 탱글한 것 = 정말 탱글한 것의 식감이 된다. 거기에 밑에 생들기름도 고여 있어 몽글몽글 섞어 수저로 퍼 먹으면 고소하고 상큼한 탱글한 가리비를 먹을 수 있다! 이번에도 아쉽지 않게 무슨무슨 허브를 맨 위에 예쁘게 얹어 주셨다. 

 

와송과 스태비아

중간에 입을 클렌징할 수 있는 작은 디쉬가 나온다. 이걸 구성하는 모든 재료를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지라 흥미롭게 들었다. 와송과 동충하초를 건조하여 칩처럼 해 두었고, 그 위에 치즈 같은 아이스 플랜트가 얹어져 있다. 이 디쉬의 화룡점정은 맨 위에 있는 스태비아라는 허브다. 

 

스태비아는 허브인 주제에(?) 설탕의 200~300배의 단 맛을 가지고 있는 신기한 친구다. 웨이터분이 이게 너무 달 테니 조금씩 뜯어서 와송칩과 같이 먹으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렇게 조금씩 감칠맛 나게 먹질 못 하겠어서 두 입에 와구와구 다 먹어버렸다. 다행히 질리게 단 맛은 아니었지만 정말 허브에서 단 맛이 난 덕분에 와송의 시큼한 맛과 조화가 좋았다.

 

갑오징어 먹물이 칠해진 플레이트 위의 광어들

플레이트 위의 저 검은 칠은 너무 당연히 플레이트의 문양인 줄 알았는데, 갑오징어 먹물 소스였다! 쌩 먹물은 아니고 약간 매콤한 맛이 가미된 소스였고, 더 매운맛이 필요하면 옆의 고추장 소스를 찍어 먹으면 된다. 

 

광어회를 이렇게 예쁘게 준다니... 게다가 광어회의 개수 대비 소스를 정말 넉넉하게 주셔서 우리는 광어 하나마다 앞뒤 고르게 소스를 발라 먹으려 애를 썼다. 같은 양의 생선이라도 다른 데서 먹었던 그 어떤 4점보다 기억에 남게 먹었다. (너무 극찬만 하나 머쓱)

 

단호박과 비단멍게 그리고 와송풍선(?)

엄청난 무게의 나무 그릇에 나오는 단호박 스프이다. 위에는 비단멍게가 곱게 올려져 있고, 무엇보다 와송풍선(?) 혹은 오송젤리(??)가 신기했다. 저게 안에 와송 가루가 가득한 물풍선 같은 형태이고, 수저로 톡 터뜨리면 주변에 화아-하고 퍼진다. 원래는 젤리를 터뜨리고 비단멍게와 단호박과 적절히 떠서 먹으면 되는데 나는 저게 터지면 감당이 안 될 것 같고 아까워서 한 입에 하나씩 먹었다.

 

고등어와 감귤식초

하 이 고등어... 정말 최고였다. 나는 비린 맛을 끔찍이도 싫어해서 고등어 요리는 정말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다이닝포레의 고등어는 태어나서 먹어본 것 중에 최고의 고등어였다. 정말 고등어가 잘 요리하면 이마만큼 맛있구나! 라는 감탄에 감탄을 했다. 훈연을 한 상태여서 훈연 향이 잘 올라오고 고등어 자체도 전혀 비리지 않았다. 거기에 감귤식초와 민트허브가 같이 있어서 한 번씩 같이 먹어주니 상쾌했다. 그런데 여기서 고등어를 맛있게 먹고 다른 데 가서 시메사바를 시도했다가 크게 데인 기억이 있다. 역시 잘하는 집인 걸로...

 

이쯤 되니 허브가 치트키 원재료가 아닌가 싶다. 무엇을 먹든 상쾌함으로 마무리해주다니...!

 

들깨수제비와 치킨스톡

파인다이닝에서 수제비라니! 그것도 엄청나게 따끈하고 맛있는 수제비라니!! 이건 정말 보양식 느낌이었다. 알알이 알찬 만두같이 생긴 수제비가 세 알 나오고 그 위에 치킨 육수를 부어주신다. 수제비 하나하나 안에는 들깨와 속이 가득해서 고소하다. 

 

무엇보다 육수가 엄청났다... 웨이터분 설명으로는 뿌려주신 자그마한 주전자 하나에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납득이 가는 진함과 맛이다. 나는 분명 보양을 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정말 보양식처럼 속을 따끈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이닝 코스 중간에 이런 디시를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속 든든한 충격이었다.

 

바질바질 문어

바질오일과 스위트바질 그리고 문어에 체리소스(?)가 가미된 요리였다. 저기 오른쪽에 있는 예쁜 색감의 가루가 무려 바질오일이다. 오일을 가루화 시킨 거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으면서 따뜻한 느낌의 오일이 된다. 분자요리 같은 느낌인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체리소스로 기억에 남은 저 소스는 달짝하고 상큼했다. 바질오일이 신선하고 재밌긴 하지만 내내 먹으면 조금 느끼할 수 있다. 문어를 조금씩 잘라 체리소스 조금, 바질오일가루 조금 찍어 먹으면 조합이 훌륭하다.

 

사실 세번째 병이었던 우곡주 (두번째는 제주오메기술)
우리가 클리어한 세 병의 전통주

코스를 지나며 이미 두 번째 전통주까지 클리어했다. 두 번째는 술익는마을의 제주오메기술이었는데 이거 정말 내 인생 술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화이트와인 같은 느낌인데 점도가 조금 있지만 무겁지는 않다.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고 바디감도 적절하니 정말 한국식 와인이었다.

 

웨이터분이 하나하나 추천과 설명을 해 주시면서, 오메기술 장인이 원래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따님과 며느리에게 각각 비법을 전수해주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메기술 라인이 두 개가 생겼는데 정작 이게 어느 라인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맛있었다! 그 후로 제주 오메기술 파는 곳이 보이기만 하면 사 마시고 있다.

 

세 번째로는 우곡주라는 탁주를 꺼내 주셨다. 앞의 두 개와는 달리 조금은 담백한 맛으로 괜찮았다.

 

한우채끝

마지막 메인으로 나온 한우 채끝살 스테이크.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미 8코스를 마쳤기 때문에 아쉽지는 않았다. 코스요리에서 고기가 맛있기 쉽지 않아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역시 맛있는 집은 뭘 해도 잘해)

 

그릭요거트와 꿀, 샤인머스캣

후식으로 그릭요거트가 나온다. 꿀이랑 무화과 그리고 샤인머스캣이 함께 나온다. 그러나 이쯤 되면 여전히 배가 너무 불러서 별로 들어가지 않는다.  무언가 아삭하게 씹히는 느낌이 좋았다.

 


이 글을 쭉 보다 보면 느꼈겠지만 나는 다이닝포레에 진심이다. 먹는 내내 맛은 물론 기분까지 좋은 경험이었고 이번에 글로 써내면서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의 기분 좋음이 되새겨져 나도 더 신이 났다.

 

이 곳의 최대 장점은 확실한 컨셉, 그에 걸맞은 음식 퀄리티, 그리고 웨이터분의 열정이다. (쓰다 보니 다 장점이네) 굉장히 밝은 인상을 지닌 웨이터분이 처음부터 모든 음식에 대해 신이 나서 설명해주시고 전통주를 추천해 달라 요청드릴 때마다 옛날 얘기해주는 이야기꾼마냥 우리를 홀려버렸다. 처음에는 '와 이런 웨이터가 있으면 사장님 정말 든든하시겠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본인이 대표님이셨다!

 

안에서 열심히 요리하는 셰프님을 본인이 오랫동안 욕심 내다가 설득에 설득을 거쳐 모셔오셨다고 했다. 너무 맛있고 멋진 다이닝을 운영하면서 늘 본인의 음식과 서비스에 진심인 분이셨다. 덕분에 우리도 더욱 행복하게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고, 인생 전통주도 접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곳을 다녀온 이후로 전통주에 눈을 떠서 열심히 찾아다니는 중이다.

 

모든 음식이 거를 타선이 없고 멋진 웨이터와 철학을 지닌 다이닝포레. 재방문, 재재방문이 너무나도 잘 예상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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